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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예배를 통해서 주님과의 관계를 맺어 나갑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와 하나님의 만남만 있을 뿐, 또 다른 존재인 이웃이 제외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을 통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은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웃이라는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독일의 신부이자 화가인 지거 쾨더(Sieger Koder, 1925~2015)가 남긴 작품 가운데에는 “너희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오늘의 말씀인 마태복음 25장 35~40절 ‘최후의 심판 이야기’에 나오는 여섯 가지 상황을 참고로 했습니다. 살펴보면 굶주렸을 때, 목말랐을 때, 나그네였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감옥에 있을 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관심 대상이 되지 않는, 그래서 손을 내밀지 않았던 보잘것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자신을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자, 옥에 갇힌 자와 똑같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가장 낮은 자로 오셨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실제 이러한 인간의 모습으로 존재하신다고 하니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상상하는 것조차도 힘든 장면입니다.
이웃을 향한 우리의 무관심에 대해 예수께서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40절) 이 말씀은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굳어진 우리의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약자들이 바로 그리스도다’라는 깨달음은 우리의 게으른 마음을 깨우고 무심했던 이웃에게 관심을 두게 합니다.
지거 쾨더 신부님의 그림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거기에서 다양한 모습과 얼굴을 한 이웃을 만나게 됩니다. 이 모두는 우리 신앙인들이 돌보아야 할 이웃입니다. 우선 흙투성이의 거친 손을 내민 이웃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고된 노동을 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굶주린 이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자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어 빵 한 조각을 건넵니다. 또 병자를 간호하고 나그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옥에 갇힌 자를 위로해 주는 자도 만나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렇게 대접받는 이웃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로 예수님 얼굴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맨 앞 노동자의 거친 양손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손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편이 나뉘고 삭막해져만 가는 현대사회에서 구원과 돌봄이라는 것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묘사한 작품으로, 우리의 이웃은 누구이며 그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스도와 연결 지으면서 다소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웃은 누구일까요. 예수께서는 자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시고 이웃의 얼굴로 우리와 마주하고 계십니다. 구원은 나 홀로의 구원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이웃과 함께하는 모두의 구원이 아닐까요. 갈수록 삭막해지는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과 얼굴을 한 이웃의 얼굴이 바로 예수님 얼굴이라고 여기고, 이러한 인식 속에서 이웃 섬김을 이어 나간다면 우리의 신앙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