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정의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부유한가’라는 물음은 옛사람들에게 사회 윤리의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에서는 ‘정의로운 사람은 잘되고 불의한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라는 인과응보 사상이 일찍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어떤 사람들은 정직하고 정의로운 삶이 경제적 풍요를 위한 절대 필요조건이길 희망하며 이상 사회를 꿈꾸기도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 역시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의무이며 그 결과에 대한 보상도 수없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중에는 자신의 풍요로운 삶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 경건 때문에 주어진 보상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롭고 경건한 신앙인도 궁핍과 고난 때문에 절망하기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시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탄식을 토해내기도 합니다.
욥은 시련과 고통을 온몸으로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해 하나님을 경외했을 뿐만 아니라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삶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충분한 조건입니다. 그런 욥에게도 시련이 찾아옵니다. 이유 없는 재난으로 재산을 잃고 자녀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며 욥 자신도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친구들과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난 앞에 욥 역시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태어난 날을 한탄하며 원망을 쏟아 냅니다.(욥 3:3~11)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는 욥의 탄원을 외면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예배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고난받기 전에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하나님을 만난 적도 간절한 기도를 통해 영적인 체험을 경험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의 예배는 자녀들이 즐겼던 파티 후에 혹시 모를 죄의 두려움으로 드려지는 것이었습니다.(욥 1:5) 그러나 욥은 고난을 경험하고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진솔한 만남을 원했습니다.
결국 과거에 없었던 간절함과 진실함을 통해 하나님을 대면하게 됩니다. 욥은 폭풍 가운데서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인간의 이치로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을 받았습니다.(욥 38:1) 귀로만 듣던 막연한 하나님이 아닌 눈으로 뵙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욥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이 회개에는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놓인 욥을 여전히 외면하지 않으시고 은총을 베푸는 분이셨습니다. 이 은혜를 깨달은 욥은 논쟁과 반목의 대상이었던 친구들을 위해 화해의 기도를 합니다.(욥 42:10)
그리스도인이 이유 없는 시련을 겪을 때 하나님 앞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믿음을 더 굳게 잡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가졌던 관습적 신앙에서 새로운 신앙으로 도약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고난은 누군가에게 절망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 회복하는 희망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시련을 극복한 사람은 자신을 성찰할 줄 알고 이웃과 더불어 회복을 이루어 내는 선교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은혜를 깨달은 회복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