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는 방식에는 단순하게 말하면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죄성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역사적-신학적 순서는 전자가 옳지만, 경험적-실제적 순서는 후자가 적절해 보인다. 인간은 왠만해서는 돌이켜 믿지 않는 완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특별히 후자의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당신의 자녀[=이스라엘 백성]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미워하셨다(19절). 그들은 심히 패역한[=반역/배반하는]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이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더는 긍휼을 베풀지 않으심으로] 그들을 심판하신다(20절). 그들이 하나님 아닌 것과 허무한 것[=우상]으로 여호와의 질투와 진노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하나님도 백성 아닌 자와 어리석은 민족[=이방인]으로 그들을 시기나게 하고 분노를 격발하신다(21절).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하고 심각하다는 데 있다. 여호와의 진노의 불은 땅과 그 소산, 산들의 터는 물론 심지어 스올[=죽은 자들이 거하는 지하세계]의 깊은 곳까지 태울 것이다(22절). 하나님께서 재앙을 이스라엘에게 쌓으실 것이다(23상절). 여호와의 화살이 그들을 쏠 것이고, 이스라엘은 기근과 불볕더위, 전염병과 자연재해, 전쟁과 공포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23하-25상절). 이러한 재난과 심판은 남성과 여성, 어르신과 어린아이를 구별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임할 것이다(25하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던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스라엘 민족을 흩어지게 해서 인류가 그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하려 하셨으나, 이방 민족들이 교만하여 여호와가 아니라 자기들의 힘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할까 염려하신다(26-27절). 우리는 여기서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며, 심판 이후에 회복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심판과 저주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보통 사람들은 구원과 축복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신명기 28장을 다시 읽어보라. 축복 이야기가 먼저 나오기는 하지만, 저주 이야기의 분량이 축복 이야기의 분량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길다. 그만큼 하나님의 경고가 준엄하다는 말이다. 오늘 본문에서 나는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불순종이 도를 넘으면 주께 긍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영역 뿐 아니라 영적인 영역에서 임계점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분명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그분의 인내에도 한도가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살아남을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너무 늦기 전에 돌이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자.
둘째, 죄의 관성과 영향력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며칠 전 JDM 본부에서 다음세대 지도자를 위한 간사훈련 소그룹이 있었다. 그때도 했던 이야기지만, 우리의 나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거짓 신이나 우상이 있다면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우리를 버리실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지배적인 음율은 심판과 공의가 아니라 구원과 사랑이라는 점이다. 본문에는 심판과 저주, 재난과 재앙에 대한 언급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지만, 마지막 장면은 이스라엘에게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우리의 원수 마귀에게 틈을 두지 말고,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즐거이 그분만 섬기자.
어제 보건당국은 생활방역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벌써부터 초파일로부터 시작하여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황금연휴 기간에 제주도 항공편과 숙박 예약이 매진을 앞두고 있어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코로나 재앙과 기후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것에도 한계가 있음을 기억하고 겸비하여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