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무수히 많은 상징이 등장한다는 것이고, 또 그 상징 배후에 저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해석을 요구하고, 특별히 본문의 맥락과 당시의 배경과 저자의 의도를 살피는 과정을 수반한다. 감사한 것은 유사한 패턴이 다니엘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세 번의 반복되는 심판 중에서도 대접 심판의 칠분의 오를 다룬다.
요한은 성전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일곱 대접을 쏟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이다(1절). 첫째 대접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는 것이다(2절). 마치 출애굽 당시 애굽에게만 재앙이 임했던 것처럼(출 7-10장), 심판의 대상이 특정된 것을 주목하라.
둘째 대접은 해양생물이 모두 죽는 심판이다(3절). 셋째 대접은 강과 물근원이 피가 되는 심판이다(4절). 이것은 그들이[=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주어진 심판이다(6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때 등장하시는 심판주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영원하신 분이시고, 거룩하신 분이시며, 전능하시고, 참되시며, 의로우신 분이시다(5, 7절).
넷째 대접은 태양이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는 심판이다(8-9상절). 재앙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으며 주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9하절).
다섯째 대접은 짐승의 왕좌[=로마 제국, 오늘날에는 그에 상응하는 세상 나라]에 임한 어둠의 심판이다(10상절). 사람들은 이처럼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한다(10하-11절).
심판의 메시지를 듣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전하는 것도 고통스럽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전한 메시지는 주로 심판이었고,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계시록도 일종의 선지서이기에 동일한 메시지를 전한다. 즉 여러 번 심판에 대한 예언이 등장하고, 회개에 대한 권면이 이어진다.
본문에서 나는 두어 가지 적용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책임에 대한 것이다. 첫째, 우리는 영원하시고 거룩하시며 전능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을 찬양해야 한다. 우리의 예배가 아무리 제한 받아도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계속되는 심판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물론 본문의 심판은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절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아, 그러면 나와 상관 없구나"하는 교만과 방종이다. 참된 개혁주의자는 운명론이나 숙명론이 아니라 예정론을 믿는 사람이다. 개혁주의 신앙은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며 부단히 삶을 개혁할 것을 요구한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JDM 대학집회가 이제 6일 앞으로 다가왔다. 2020 기도운동도 계속되어야 하지만, 아침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QT도 중단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변화시키며, 거짓과 탐욕으로 물든 죄 많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