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12지파 중 유일하게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한쪽 반 지파는 요단 동쪽에, 다른 쪽 반 지파는 요단 서쪽에 나뉘어 살게 된다. 한편으로는 모세가 바산에서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을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호수아가 요단 서쪽에서 나머지 반 지파에게 기업을 주었다(7상절).
여호수아는 이제 므낫세 반 지파를 축복하여 그들을 돌려보낸다. 내용인즉슨, 원수들[=가나안 족속들]에게서 탈취한 것[=전리품], 즉 많은 재산[=심히 많은 가축, 은, 금, 구리, 쇠, 심히 많은 옷]을 가지고 돌아가서 형제들과 나누라는 것이다(7하-8절). 이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실로에서 길르앗으로 갔다(9절).
2+1/2지파는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러, 제법 큰 제단을 쌓았다(10절). 그런데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한 이 행동이 뜻밖의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9+1/2지파는 2+1/2지파가 요단 접경에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듣고,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우상을 숭배하려는 줄 오해하고,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2+1/2지파와 싸우기 위해 떠났다(11-12절).
위드 코로나 시대 뉴노멀 중 하나가 비대면(untact)이다. 그런데 이처럼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것은 종종 화자의 의도가 왜곡되어 청자에게 전달되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오해의 플랫폼은 아마 카카오톡일 것이다. 나는 분명 A라고 말했는데, 상대방은 B라고 듣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대면이 가져온 폐단 중 하나다.
온라인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는 사람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표정을 읽어내지 못하고, 행간의 의미를 놓칠 위험성이 다분하다. 따라서 비대면의 약점을 대면 모임을 통해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해도 오해가 생기는데, 하물며 비대면의 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본문이 전하려는 중요한 요점 중 하나는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요한 의사결정은 물론이고, 수많은 만남 속에서 경청의 기술과 신중한 언어 선택, 충분한 소통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분위기가 일촉즉발의 위기를 만들어 내는 오늘 본문이 그 좋은 사례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실행되고 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필두로 해서 수많은 사람이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지금, 속도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재난지원금만 하더라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다(약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