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접경 지역에 제단을 쌓자, 이스라엘 자손은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아론의 손자]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파견한다(13절). 그런데 비느하스는 홀로 가지 않고, 요단 서쪽 지역에 정착한 열 지파(므낫세 반 지파를 포함해서)의 수령[=천부장, 1,000명을 이끄는 지도자] 열 명과 함께 간다(14절).
합동 조사단은 길르앗 땅에 이르러 2+1/2지파에게 어찌하여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였는지를 추궁한다(15-16절).
조사단은 모압 여인과 음행하고 그들의 신 바알브올을 숭배했던 "브올의 죄악"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받은 재앙과 아직까지 그들이 그 죄로부터 정결함을 받지 못했음을 상기하며, "오늘"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배역함으로 "내일" 여호와의 진노를 받으려고 하느냐며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책망한다(17-18절).
혹시 2+1/2지파가 요단강을 중심으로 9+1/2지파와 분열되어 스스로 요단 동쪽 땅이 부정하다고 느낀다면, 요단 서쪽으로 건너와서 다시 땅을 분배 받는 것은 어떠냐는 대안까지 제시하면서, 조사단은 하나님이 정하신 제단 외의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와 이스라엘 공동체를 거역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19절).
조사단은 다시 한 번 아이성 패배의 원인이 되었던 아간의 범죄로 인해 온 이스라엘이 받았던 진노를 상기하며,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돌이킬 것을 호소한다(20절).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는 여호수아 시대에 리더십과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 기뻤다. 첫째, 리더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접경 지역에 제단을 쌓은 것이 문제가 되자, 요단 서쪽 지파 사람들은 즉시 조사단을 구성하여 요단 동쪽 지방에 보냈다. 모든 일에는 골든아워가 있는 법인데, 이스라엘 회중은 이 일을 즉시 실행했다는 점에서 지혜로웠다.
둘째, 리더는 공동체의 역사를 꿰뚫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적절하게 인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주 먼 옛날,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미드를 시청했던 적이 있는데, 법대생들은 판례를 줄줄 외우고 있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영적 지도자들도 자신이 섬기는 공동체 안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과 그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하고,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의 경우는 반면교사였지만, 정면교사의 사례도 인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리더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2+1/2지파는 이미 모세 시대에 땅을 분배 받았으나, 중앙 성소가 요단 동쪽에 있어서 그들이 거주하는 땅을 스스로 부정하다고 느낀다면 건너와서 다시 땅을 분배 받으라는 것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이것은 9+1/2지파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일 수도 있는데, 그들은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토보다 신앙이 우선이고, 개별 지파보다 이스라엘 민족의 연합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9월도 벌써 중순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는 건재하고, 정부는 수도권 방역수위(현행 2.5 단계)를 낮출지, 말지 고민 중이다. 방역도 중요하고 경제도 중요하기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사회를 향하여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