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여 거룩한 삶을 실천하고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하늘 백성 위에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아사셀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는 산 채로 주 앞에 세워 두었다가, 속죄제물을 삼아, 빈 들에 있는 아사셀에게 보내야 한다.”(16:10 새번역)
‘아사셀의 염소’는 해석하기가 난해한 주제입니다. 보통 ‘아사셀’이 광야, 곧 접근하기 어려운 땅(16:10, 22)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즉 누구도 접근하기 어려운 험지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내몰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칠십인경>에서는 “아세셀을 위하여”(16:10)를 ‘토 아포폼파이오’(τῷ ἀποπομαίώ)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사람들의 죄악을 지고 가느라 희생되는 ’희생양‘을 의미합니다. 영어의 scapegoat(속죄양)이 바로 이 표현입니다. ‘아사셀의 염소’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레위기 17:7과 연관됩니다.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레 17:7) 이 구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전에 ‘숫염소’에게 제사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아사셀’은 ‘여호와’와 비견되는 신적인 존재입니다. 아사셀에 대한 언급은 레위기 16장 외에는 등장하지 않아 더 자세한 설명을 기대할 수 없지만 유대의 다른 문헌에는 아사셀을 하나님을 반역하는 존재로 표현합니다. 주전 2세기의 문서로 알려진 에녹1서에 따르면 아사셀은 타락한 천사 중 하나로 사람의 딸을 취하여 사람들에게 악을 전파한 존재입니다(에녹1서 10:8). 하나님은 천사에게 명령하여 아사셀을 ‘흑암’에 던질 것을 명하여 광야의 커다란 구멍에 던져지고 무거운 바위로 덮었습니다. 광야를 악마의 거처로 묘사한 이유가 이에서 기인한 듯합니다(사 13:21, 34:14, 바룩 4:35, 마 4:1, 눅 11:24, 계 18:2).
우리가 세 번째 입장을 취한다면, 레위기에서는 아사셀의 신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습니다. 염소를 죽여 피를 뿌리는 등의 제의도 없습니다. 이 염소는 악마에게 바쳐진 제물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와 부정을 광야(형벌의 무저갱)로 나르는 존재, 이스라엘의 죄와 악을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추방시키는 존재입니다. 마치 뱀에 물린 이스라엘의 치료를 위하여 놋뱀이 들렸듯이, 숫염소 신에게 죄가 전가된 숫염소를 보내므로 회복과 치유를 얻는 모형이 아닐까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